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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오늘/북한의 실싱

북한의 함경북도 제3의 해양되시 청진시 기행

 

함경북도 청진지소개

원래는 부령군 관할의 작은 어촌이었으나 1908년 개항장으로 지정되면서[3] 시가지가 형성되고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1910년 부령군 전체가 청진부로 승격되었다가, 1914년 청진부의 영역을 개항장 일대로 축소시키고, 나머지 면 지역을 다시 부령군으로 분리시켰다.

원래는 동쪽 고말(高抹)반도에서 도시가 발달하여, 점차 서쪽 수성평야로 도시가 확장되는 양상을 띄었다. 1940년에 경성군 나남읍, 용성면 및 부령군 일부를 편입하여 면적이 275km2(당시 평양의 면적과 맞먹었다)로 늘어났고, 인구 규모면에서도 20만에 육박해 전국 5대 도시(인천, 대구와 맞먹었음)로 발돋움하였다.[4] 원래 함경북도의 도청이 있던 경성군(鏡城郡) 나남읍이 청진에 흡수된 것도 이 때로, 이로써 청진은 함북의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함경북도의 해안선 중앙에 위치하여 전쟁에서의 주요 목표가 된 일이 많다. 태평양 전쟁말기 소련이 만주를 침공하면서(8월의 폭풍작전) 부수적으로 함경북도에 군대를 보냈는데, 광복 전까지 소련군이 당도한 최남단 지역이었으며, 6.25 전쟁당시 국군이 가장 북쪽으로 진격해서 점령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 광복 이후 북한에서의 행정구역 변화가 심한 지역중 하나. 한때 청진직할시(1960~1967, 1977~1985)였던 적도 있지만 현재는 일반시이다.[5] 이처럼 직할시 승격과 일반시 격하가 반복된 근본적인 이유는 현지지도에 기반한 즉흥적인 정책 결정에 있었다. 즉, 김일성이 현지지도와 교시를 통해 후방 제철기지인 청진에 대한 후방지원의 중요성을 역설하면 직할시로 승격시켰다가[6], 명색이 직할시인데 정작 중앙에서의 지원은 지지부진하고 더불어 직할시당과 도당 간의 알력 다툼까지 벌어지면[7] 결국 직할시를 일반시로 격하시키는 사태가 되풀이 된 것이다.현재는 일반시지만 그래도 함경북도 최대의 도시 역할을 맡고 있으며 북한의 대도시이다. 또 공업과 항구도시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고 인구도 많이 때문에 매우 중요한 도시이다.  ****** 청진시 중심가 풍경  ******

 

 

 

  청진시내 모습이라고합니다.

 

 

       청진시 청년역 

 

 

             청진시 주택가 야경모습  이라고합니다.

 

 

  청진시야경 

 

 

  주택가 풍경

 

 

  청진시  시내거리  모습

 

 

 

            청진 어랑비행장의 민간 비행기 북한국영항공사  고려항공  

 

 

  남포에서 나진가는 열차모습이람니다..

 

 

  청진시 시내에 있는 고층아파트 .........!!!!

 

 

  청진지역의 상점

 

 

 청진시  작은 어촌미을  포구 모습같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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