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발생한 1.21사태, 김신조 루트로 명명된길 를따라 43년만에 개방한다는 제3루트까지 가보기로 했다. 지금40대 까지도 1.21 사태를 아는사람 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많은 세상이 되어 버렸내요. 김신조 덕분에 36개월 가까운 군생활을 했었는대 앞으로 2014년 까지 18개월로 복무기간이 줄어든다니 .격세 지감에 앞서 이나라 위정자들은 과연 국토방위에 대한 개념 이나 있는지? 심히우려 되내여 4호선 한성대역 6번 출구로 나오니 박미자 혼자만 먼저 와있 고. 나머지 3명은 못온다내여? 쯔쯔 산행 친구야 많으면 좋곗지만 둘만 되어도 좋지요 .잠시 방향 감각을 일어 십여분 방황 하다가 와룡공원 으로 들어 서니 10시35분이 되엇내요. 예상되로 산행객들이 제법 많더이다.
성곽사이로 난 길을 따라 말바위쉼터로 갑니다.
성곽 바깥으로난 수레기로
숙정문 문루 위
숙정문에서 나와 목책계단으로 내려서면 쉼터거나옴니다.
북악산 팔각정으로 향하느 시맨트 계단
계단위로 올라서 게속 이어진 시맨트 길을 따라 5분정도 진행합니다.
성북천 발원지 / 발원지 팻말을 지나 오른 편 경사로 올라 서면 북악 팔각정가는 길이 됨니다.
팔각정 을 향해오르는 된비알길 서울 성곽을 바라보며 오르계됨니다.
북악 스카이웨이옆 팔각정
팔각정앞을 통과해 능서따라 진행하다가 다시 호겨암 가는 방향으로 다시내려옴니다;
삼청각 방향 팔각저을 가지안고 성북천 발원지에서 나무계단따라 삼청각으로 진행해도됨니다.
목책계단으로 이어진 호경암 가는길
솔바람교에서 휴식을 하고 바위 뒤로난 계단을 따라 호경암으로
호경암까지 계속이어진 나무계단
호경암 오르기직전 북악 팔각정 모습
능선 따라 이어진 서울 성곽/ 바로앞 길은 북악 팔각정까지 오르내리는 등산로
숨가쁘계나무계단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올라서면 , 한숨돌릴수 있는 능선길로 들어섭니다.
호경암으로 오른는 마지막 나무계단
호경암 / 1.21 사태 격전지/ 동그란 표시는 김신조일당과 격전으로 바위에난 총탄자욱 1.21사태개요/ 1968년1월21일 김신조 외 무장공비 29 명이 청와대를 급습하려고. 했던 사건 으로 구평동 버스 정류장에서 이들 일당 발견한 정종수, 박태안 당시종로 경찰서형사의 기지로, 세검정까지동행 자하문에서 맛딱드린 종로 경찰서장 이었던 최규식 서장의불심검문에불응 이곳 에서부터 치열한격전이 벌어져 30명의무장공비는 분산도주 호경암도 그 격전지 중하나로 이곳 에서 3명의 무장 공비을 사살, 이 사태로 군은 이익수 대령 및 장병 23명사망, 부상 53명이 발생한 사건으로 이사태 당시 국무총리정일권 [丁一權 ] 수경사사령관 최우근[ 崔宇根] 30 사단장 허준(許 準) 준장, 30경비 대대장 중령 전두환, 작전 주임 장세동, 채원식치안국장, 윤필용 [尹必鏞] 방첩대장 북괴124군 부대출신 30명 이, 임진강 상류 고랑포로 얼어붙은 강을 건너 이곳까지 왔다고하며,실제 청와대을 기습하리라고는 생각 못했던 모양으로 이사태로 무장 공비 27명사살 1명포로 종결되었고 그해 4월1일, 자로 250만의 향토 예비군이, 창설 되었으며 5월29일 법령선포로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우리 세대는 36 개월가까 운, 군생활하는 계기가되었다. 호경암 동그런 표시는 당시 격전을 벌렸던 총탄자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