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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이야기/세계의 해병대

한국 해병대

 

  해병대  수륙 양용 장갑차

  상륙작전을  주임무로하는 해병대~상륙작전의 선봉전력인 상륙돌격장갑차(KAAV)  상륙훈련   의 결정적  행동단계에서 적해안을

  향해거침없이  돌격하는상륙돌격장갑차는 3명의 승무원이탑승하고 완전무장한  상륙군 21명이 탑승할 수 있는 해병대에서만

  운용하는 장비중 하나이

 

   상륙 이란  해상으로 이동하여 적 해안에 기습상륙 하는것을, 상륙작전 이라고 한다. 상륙작전의  특징은  승패에  따라 전쟁의 양상을

  유리하게  이끌수있다는점이다.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한국전쟁의 인천 상륙작전은  대표적 사례이다.하지만상륙작전은

   일반작전과  달리해상과 육상에서 특수한 훈련을  필요로한다.  이러한특수한 훈련을 받는 부대가  해병대이다. 해병대는 상륙작전 임무에 

   맞게  타 군에는 없는  특수한 장갑차를 운용한다. 바로 상륙돌격장갑차이다. 상륙돌격장갑차는  바다에서  해병대원을  태우고,  적이 점령

   하고 있는 해안가로  상륙하는 수륙양용장갑차이다. 대표적인 상륙돌격장갑차로는 미국이 개발AAV-7A1이 있다.  AAV- 7A1은 1,700

   여대가 생산되어, 10여  198개국가의 해병대에서  운용 중에 있다.            상륙함에 도크로탑재된은  AAV - 7 A1

 

 삼면이 바다이며 동북아시아의 관문이라는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예부터 열국분쟁의 초점이 되어 왔다.  이러한 조건과  더불어 분단

 이라는  정치적·군사적 환경 때문에 대한민국 국방은 수륙양면작전을  전개시킬 수 있는 전략 기동부대로서의  해병대 창설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신생국가인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사회적  어려움  때문에 이를  추진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

  반란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륙양면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해병대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됨에

  따라 해군총참모장을 비롯한 군 수뇌들은 해병대 창설을 적극 추진했다.

  그 결과   1949년 4월 15일   해군에서  편입한 380명(장교 26명, 하사관 54명, 병 300명)으로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해병대  창설식을

  거행했으며, 1949년 5월 5일 대통령령이 공포됨에 따라 법적인 승인을 얻게 되었다. 창설 당시  380명의 병력과 일본식  장비를 가지고

   탄생한  해병대는 비행장 격납고를  병사로 사용하는  등 열악한 시설과 여의치   못한 군수 지원  등의 악조건  속에서 시작한  해병대는

   1949년 8월 15일 서울에서 거행된 조국광복 제4주년 기념식에  참가해 창설 을 처음으로 알렸다.

 

여수·순천 반란사건 이후 지리산으로 잠입한 공산당 유격대들은 진주를 비롯한 주변 일대의 도시와 촌락에 출몰했다. 이에 해병대는

1949년 8월 29일 진주로 이동해 진양군·창녕군·함안군 일대를 경비하면서 성과를 거둔 뒤, 1949년 12월 28일 제주도로 이동했다.

당시 제주도에는 1948년 4월 3일 폭동을 일으킨 공산당 유격대들이 한라산을 근거지로 관공서를 습격하고 방화하는 등의 사건을

벌이고 있었다. 해병대는 이들을 토벌하면서 4·3사건 이후 피폐한 도민들의 생활 안정과 도내 치안 확보를 맡았다.

1950년 6월 25일 제주도에서 한국전쟁을 맞이한 해병대는 서해안으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1950년 7월 15일 고길훈

(高吉勳)부대를 제주도에서 출항시켰다.

 

1950년 7월 16일 군산에 입항해 장항 북방까지 진출한 해병대는 그 해 7월 17일 남하하는 북한군과 조우해 7시간의 치열한 전투를

감행하는 처녀작전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1950년 7월 31일 진주를 점령한 북한군이 유엔군의 최후 보루인 부산과 진해에

위협을 가중시키기 위해 마산 방면으로 침입함에 따라 그 해 8월 3일 김성은(金聖恩) 부대는 진동리로 출병해 북한군 대부대를 궤멸

시키는 큰 전과를 올렸다 . 이에 1950년 8월 5일 국군 중 최초로 대통령으로부터 부대장 이하 전 장병이 일계급 특진을 하는 영예를

차지했 다. . 그 해 8월 17일에는 북한군이 진해와 마산 등 병참기지와 군항을 봉쇄하기 위해 통영을 점령함에 따라 한국 해군 함정의

지원, 엄호 하에 통영반도에 기습상륙작전을 감행해 북한군의 대부대를 일거에 포위, 섬멸했다. 또한 통영반도를 사수하는 등 연이은

승전보를 점함으로써외신기자들이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특필보도로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1950년 8월 낙동강 전선에 방어진을 구축해 지연작전에 종지부를 찍은 유엔군은 총 반격작전을 전개하기 위해 그 해 9월 15일 인천상륙

작전을 감행하게  됨에 따라 해병대는  제주도에서 1개 연대규모로   증편해 9월 6일  부산으로 이동했으며,  국군 중에서 유일하게 유엔

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가담했다 .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해병대는 인천시가지에 남아 있는 북한군을   소탕한 뒤, 서울로 진격해

1950년 9월 27 전쟁 발발 90일 만에 중앙청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9월 28일 서울을 완전 수복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서울 탈환의 선봉부대로서 임무를 완수한 해병대는 서울 경계임무를 육군 제17연대에 인계하고, 1950년 10월 27일 원산에 상륙해 함흥

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유엔군의 흥남철수작전과 병행해 그 해 12월 15일 일시 진해로 철수했다.

해병대는 진해에서 부대를 정비, 보강한 뒤 1951년   1월 24일 동부 전선으로  출병해 경상북도의 영덕·안동·영주 지구와 강원도의 영월

·홍천· 화천 등을 점진적으로 확보하면서  6월 1일 양구 서남방까지 북진했으며,   6월 19일에는 양구와 인제 사이에 있는 태백산맥  

중 가장 험준한 산악지대에 있는 도솔산을 탈환했다.

 

한국 해병대는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 해병대가 성공하지 못한 도솔산 공격작전을 맡아 16일 간의 치열한 공방전을 감행해 1개 연대의

병력으로 2개 사단 병력의 적을 궤멸시키고 도솔산을 완전 점령함으로써 전술의 원리원칙을 깨뜨린 전승 기록을 다시 수립했다.

도솔산 전투에서 그 용맹을 국내외에 알린 해병대는 중동부 전선에서 가장 험준한 산악지대에 있는 924고지와 1026고지(일명 김일성고지

및 모택동고지)를 악전고투 끝에 9월 3일 완전 점령해 내금강을 감제할 수 있는 발판을 구축함으로써 해외에서도 그 전투력을 높게 평가

받았다. 또한, 1951년 2월 14일 동해안의 여도를 확보한 이래 원산만 해상에 있는 9개 도서와 서해안의 초도·석도 등 5개 도서를 차례로

확보해 해안선을 통한 적의 보급과 이동을 봉쇄하던 해병대는 그 해 8월 28일 함경북도 성진 동북방 양도에 상륙해 해안봉쇄선을 연장하고

북한 군의 후방을 위협하는 동시에 차기작전에 대비했다.

 

1952년 2월 29일에는 양도를 탈환할 목적으로 기습적으로 대거 내습해 온 북한군 1개 대대의 병력을 불과 1개 중대의 병력으로 섬멸

하기도 했다.1952년 3월 17일 중동부 전선에서 서부 전선으로 이동한 제1연대는 1951년 2월 16일부터 김포반도를 방어하고 있던 제

5대대와함께 수도방위의 중책을  수행하면서 서부 전선의  장단·사천강·연천·김포 등  각지구에서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1년 4개월간 적의 침공을 완전히 저지하는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감행했다.

이와같이 1950년 7월 17일 처음으로 북한군과 교전한 이래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만3년간 30여 개의 전선을 전전하면서  전투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북한 및 중공군 사살 2만 3909명,  귀순 및 포로 1783명,  부상 1만 3727명 등 3만 9419명의 인적  손실을 입히고,

탱크·야포 등을 비롯한 대소화기와 장비 등 3만 4423점의 물적손실을 입히는 혁혁한  전과를   올리면서  ‘귀신잡는 해병’, 임전무퇴의

해병’등 수많은무용담을 남기고 ‘상승해병’의 전통을 수립했다.

 

        상륙작전인 통영상륙작전과 경인지구작전(인천상륙작전 및 서탈환작전 포함), 산악지구작전인 도솔산지구 전투와

924고지 및  1026고지 전투, 그리고 도서방어작전인 양도대첩 등은 국군 전사에 빛나는  해병대 5대  작전으로서

해병의 전통으로 상징되고 있다.  상륙 훈련에 돌입한 KAAV-7A1의 항주

 

상륙돌격장갑차가 탄생하기 이전에는, 상륙주정이 상륙작전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상륙주정은 몇 가지 문제가지고 있었다.

병력이나 장비 를 수송하는데는 상당히 유용했지만, 파도와 해안조건에 따라접안 능력이 부족할 때가 많았다. 또한 출구램프가

전방에 설치되어 있어, 해안가에 상륙한 병력이 적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결국상륙작전 도중 많은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륙작전을 위한신형장비 개발몰두 하던 미 해병대 수륙양용트랙터 엘리게이터(Alligator)에 큰관심

갖게된다. 엘리게이터는 1935미국의 유명한 발명가였던 도널드 로블링 (Donald Roebling)이 개발했다. 미국 플로리다

습지대에서 구난용 개발된 이장비는, 뛰어난 수륙양용 성능으로 인해 악어라는 별명의 앨리케이트라부른다 . 1941년엘리

게이터 는 군 요구사항이 갖춰진 궤도형 상륙차량, LVT (Lang ding Vehicle Tracked)-1으로 탄생하게 된다.

 

 LVT-1은  태평양전쟁 최초의 상륙작전인 과달카날    상륙작전에 처음출전했다.  이 작전에서   공격용이  아닌  함정 에서  해안까지  

 보급품 을 수송하는용도로 사용되었다. LVT-1의성능에 만족한     미군은 LVT"1의 성능개량에 들어갔다.  이후화력이 강화된  LVT-1A1

 과 현수장치와 엔진을 보강한  최초의병력 수송용    LVT-2가 등장한다.  하지 만  개량형들도  이어지는  전투에서  취약점들이  발견된다. 

 특히 1943년   11월 타라와  전투에서  빈약한 장갑으로  인해, 상당수의 LVT가 격파당했다. 또한 LVT는 탑승한 병력들이 곧바로 하차할

 문 같은 램프가  없었다. 해안가 에  도착한해병대원들은 차체밖으로  뛰어 내려야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해병대원들이 적의 공격에 쓰러

 져야했다. 이에따라 타라와 전투 이후 차체방에  램프가 달리고, 육상 이동 속도가  향상된 LVT-3가  탄생하게 된다.

 

  한화테크윈이 BAE시스템과 계약해 기술도입 방식으로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KAAV는   병력용 장갑차인   -P7A1'과 지휘용  장갑차

 인      'KAAV-C7A1', 구난용 장갑차인 'KAAV-R7A1' 등 총 3종류다. 현재 해병대에서200여대를 운용하고 있다.       독도함은 KAAV 7

 대를탑재한다. 2016년 4월, 한화테크윈은 600억원 규모의 필리핀 상륙돌격장갑차 8대 도입 사업에서   KAAV의 원 제작사인  BAE시스

 템을 누르고 공급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인도네시아에도 수출하려고 했는데, 미국이 수출승인을 거부했다.  2016 쌍용훈련은 역대 최대

 규모로 실시되었다. KAAV 40여대가 동원되었다. 2018년 쌍용훈련에서 미국 해병대가 한국 해병대의 KAAV를 함께 탑승해,  포항에서

 연합상륙작전을 훈련했다. 한미연합 상륙작전 최초로 F-35B 스텔스 수직이착륙 전투기가 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전면전 발생시 포항

 의 해병대 1사단은 오키나와의 주일미군 해병대인 제31해병원정대와 함께 원산에 상륙하여, 평양으로 직진한다. 2018년 일본은 해병대

 인 수륙기동단을 창설했다. 2,200명으로 1개 여단급 규모인데, AAV-7 52대를 수입할 계획이다.  28,000명에  2개 사단급   규모인 한국

 해병대가 KAAV-7 200대인 것과 비교하면, 적은 병력이지만 중무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승무원: 3 명                        수용량: 21 명                                   길이: 8.1 m                             폭: 3.2 m                

   높 이: 3.7 m                         중량:* 21 톤                                 최대속도: 지상 72 km/h, 해상 13 km/h
   엔진: 400 마력                           해안에 한상류한 해병대 용사들  의  힘찬 돌격 

 

 

              

 

          국산 공기부양정 인 솔개 입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전력을 자랑하는  우리해병대는, 지난1951년부터  LVT-3C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1974년에는  LVT-7을 미국의

     군사지원으로 인수해운용한다.     1985년에는 LVT-7A1을 도입했다.    1998년에는 AAV - 7A1을 기술도입   방식으로   삼성테크윈이

     국내에서생산해, KAAV-7A1이란 제식명칭을 부여해  운용중이다. FUR  수송용인  KAAV-7A1외에도 지휘차량과 지원차량도 생산되었다.

     우리 해병대가 운용중인   KAAV-7A1은 상륙작전 뿐만  아니라   육군과의 도하작전에도 투입되고,수해시에 수재민 구조용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KAAV- 생산되면서   2009년  11월에는  구형 LVT-7A1  10대가 인도네시아   해병대에 무상으로  인도되기도  했다.    한국 병대는

     미 해병대 다음으로  가장 많은, 160여대의 AAV7-A1을 운용 중에 있다.               웰독에서 발진하여  상륙작전에 투입  KAAV

 

 

 

                    해안에  상륙하기 위한   항주중인 KAAV-7A1 

 

             차 기   수륙  장 갑 차  개발

 

   1980년대초 미 해병대는 LVT-7을 개량한 LVT-7A1을 배치했다. 그런데이시기 미 해병대는 해안가상륙해    장착했고, 차체 전면에 

   선수익을  부착해   해상운행을  용이하게  했다.   또한 측면에   증가장갑인  EAAK (Enhanced Applique Armor Kit) 부착해, 

   14,5m 기관포와 152mm포탄 파편에도 방호가 가능해졌다. 이렇게 개량된 LVT-7A1은 1985년 기존의 LVT라는  이름을 버리고 상륙돌격

   장갑차,AAV(Assault Amphibious -Vehicle)-7A1로  명칭이  바뀌었다.  AAV7-A1은  걸프전을  시작으로  다양한 전쟁에 투입되었다.

   특히 이라크 전에서는 쿠웨이트    국경에서부터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까지  1,000Km가 넘는 거리를  행군하며, 전쟁을 미군  의 

   승리로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최근소식을 인용하면  아예 EFV 의 업그레이드로 가고있다. 2700마력엔진, 무인포탑과 40mm CTA도 그렇고거기에 APC도 고려

     하는 듯하다.   다만 초반에  보도한대로  수상 주행속도는  20km대가 맛고 그   이유는 기술적 결함 탓이  아니라   전장의   변화 때문

     이라고. 특히아래의  MAV가  전장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유인해 비판 받았던걸 생각하면  현명한 선택이다. 미국 해병대에

     이어 한국 해병대 역시 현재 초수평선 상륙작전    포기하였다 이를반영하듯  천왕봉급 상륙함은  LCAC   운용능력 자체가 없으며,한국

     해병대의 KAAV-A71  (차기 상륙장갑 차)역시 해상주행  속도를20kM/h 수준으로 낮추었다. 일부언론에서  잘못  비판하는

     것처럼 KAAV-Ⅱ의   해상주행 속력이 감축된것은  성능이 하락 한것이 아닌,  한국 해병대의  상륙개념  변화에  발맞추어   해상주행 

     속도를  재설정,  또한  KAAV-Ⅱ 지상작전을  수행할수  있는 충분한 방어력을 갖추며, 현존하는 모든  보병전투를 파괴할수 있는

     한국형  40m CTA  기관포장착할 계획이다. 다시말해 새로운  상륙전 교리에  발맞추어 해상항 주  속도를 줄이고  그 대신  지상전          

     능 력을 강화하는데 보다 ,     많은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차세대  수륙양용 장갑차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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